말하지 않고 말하기
우리가 잃어버린 소통의 원형
김정운 저 · 2026.05.11 출간 · 문화심리학
서론
우리는 지금 역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하루에도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점점 더 외롭고, 오해받고, 단절된 느낌을 받는 걸까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신작 『말하지 않고 말하기』에서 던지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진짜로 소통하고 있는가. 말(言語)을 넘어서, 말하기 이전에 이미 작동해야 하는 것들—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책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서가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나'와 '너'의 분리를 넘어 '우리'라는 경험을 형성하는지, 그 가장 원형적인 층위를 심리학과 철학과 문화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탐구합니다. AI가 인간의 말을 흉내 내는 시대, 이 책은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밝혀줍니다.
본론
1. 책 소개
- ① 제목 말하지 않고 말하기
- ② 저자 김정운
- ③ 출판사 21세기북스 (북이십일)
- ④ 출간일 2026년 5월 11일
- ⑤ 장르 인문학 · 심리학 · 문화심리학
- ⑥ 페이지수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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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줄거리
우리는 소통을 '말을 잘하는 기술'로 이해해왔습니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논리를 세우고,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 그러나 갓 태어난 아기는 단어도 모르고 문장도 만들지 못하면서 몇 달이 지나면 타인과 함께 웃고, 울고, 기다리고, 반응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무엇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가.
저자 김정운은 인간 소통의 출발점이 문장도, 정보도, 논리도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먼저 오는 것은 몸입니다. 책은 이 몸의 소통을 여섯 가지 키워드로 해부합니다.
첫 번째는 터치입니다. 피부 접촉은 단순한 감각 자극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가 타인에게 처음으로 확인받는 방식입니다. 신생아의 캥거루 케어가 발달에 미치는 효과, 옥시토신 분비와 신뢰 형성의 관계를 통해 저자는 터치가 소통의 생물학적 토대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터치하지만, 그 안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신체적 온기는 없습니다. 소통의 첫 번째 조건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눈맞춤입니다. 인간의 눈은 영장류 중 유일하게 흰자위가 크게 발달해 있습니다. 시선의 방향을 상대에게 노출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눈맞춤은 단순히 서로를 바라보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를 하나의 인격으로 승인하는 행위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눈을 맞추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이전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시선을 통해 감정이 전달되고, 존재가 확인되며, 관계의 문법이 형성됩니다.
세 번째는 정서 조율입니다. 발달심리학자 대니얼 스턴은 엄마와 아기의 상호작용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다가 놀라운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아기가 장난감을 흔들며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같은 리듬으로 몸을 앞뒤로 흔들며 화답합니다. 소리를 소리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리듬과 강도와 형태를 교차하며 감정의 파장을 서로 맞추는 것입니다. 스턴은 이것을 '감각 정서'라고 불렀습니다. 저자는 이 정서 조율 개념을 소통 이론의 핵심으로 끌어올립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정서 조율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화상 회의에서 참가자들의 감정이 왜 그토록 빠르게 소진되는지를 이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소통의 피로는 정보의 과잉이 아니라 정서 조율의 실패에서 온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입니다. 나아가 이 감각 양식의 교차 모방이 곧 인간 창조의 본질이라는 도발적인 주장까지 이어집니다. 독일 바우하우스가 실천했던 '색깔을 듣고, 소리를 본다'는 공감각적 실험이 상호주관적 실천의 산물이라는 통찰이 여기서 나옵니다.
네 번째는 순서 바꾸기입니다. 사회학자 하비 색스는 1960년대 자살예방센터의 전화 상담 녹취를 분석하다가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잡담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가 언제 말을 시작하고 멈출지를 정확하게 조율하고 있었습니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대화 순서 바꾸기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단 0.2초입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상대의 의도를 실시간으로 예측하며 이루어지는 '예측적 협력 행동'입니다. 오바마의 '찰스턴 연설'이 21세기 최고의 연설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가 노래를 부르기 전 행했던 '6초의 침묵'이었습니다. 논리를 멈추고 침묵한 뒤 노래한 그 순간, '나'와 '너', '흑인'과 '백인'의 경계는 녹아내렸습니다.
다섯 번째는 함께 보기입니다. 생후 9개월, 아기에게 결정적인 인지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전까지 엄마의 얼굴만 보던 아기가 이제 엄마가 고개를 돌리면 그 시선을 따라갑니다. 진화인류학자 토마셀로는 이것을 '9개월 혁명'이라 불렀습니다. 이 능력은 침팬지에게는 없습니다. 아기는 상대방의 눈동자만 위로 향해도 즉시 그 시선을 쫓아가지만, 침팬지는 눈동자의 방향에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차이가 인류 문명 전체를 설명한다고 봅니다. 별자리가 만들어지고, 신화가 태어나고, 문명이 구성된 것은 바로 이 '함께 보기' 능력 위에서였습니다.
여섯 번째는 관점 바꾸기입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피해자 서사, 팬덤 정치, MBTI 열풍—를 관점 바꾸기의 실패로 읽어냅니다. 한국어 '억울함'은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습니다. 이 단어에는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부당한 처우를 당했다', '분하고 답답하다'는 세 가지 의미 구조가 엉켜 있습니다. 피해자가 되는 순간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피해자는 약하지만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안도감이 상대를 악마화하고,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관점 바꾸기는 이 악마화의 메커니즘을 해체하는 인지적 용기입니다. 그리고 관점을 바꾸려면 먼저 '내 관점'이 존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자신만의 판단과 해석이 없는 사람에게는 애초에 바꿀 관점 자체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비고츠키의 통찰로 책의 전체를 묶습니다.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때문에 생각한다." 타인과의 대화가 내면화되어 '내적 언어'가 될 때, 우리는 정교한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한 개인의 발명품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결과물입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정면으로 뒤집히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입니다. 우리는 소통하기에 존재합니다. AI는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무한정 생성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감탄하지는 못합니다. 타인의 존재에 온몸이 반응하는 상호주관적 경험, 소통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그 감탄의 순간에 있습니다.
— 비고츠키, 『말하지 않고 말하기』에서 재인용
3. 장점
- ① 학술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균형 — 비고츠키, 토마셀로, 하버마스, 칸트, 헤겔 등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사상가들의 통찰을 한국의 직장 문화, 인간관계, 정치 현실의 언어로 번역해냅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 ② 비언어 소통의 체계적 지도 — 기존의 소통 이론들이 '발신자-메시지-수신자'의 선형 모델에 머물렀다면, 이 책은 소통의 원형적 층위를 여섯 가지 키워드로 체계화합니다. 이 틀 자체가 새롭고 설득력 있습니다.
- ③ AI 시대의 핵심 질문을 건드린다 — AI가 대화를 생성하고, 알고리즘이 관심을 설계하는 시대에, 인간만이 가진 상호주관적 소통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단순한 기술 비판을 넘어 대안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 ④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 — '억울함'이라는 한국적 정서, 피해자 서사, MBTI 열풍 등 우리 사회의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탁월합니다. 읽으면서 여러 번 "아, 이게 그래서였구나"를 경험하게 됩니다.
- ⑤ 저자 특유의 유머와 문장력 — 학술적 엄밀함과 날카로운 유머가 공존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습니다.
4. 감상평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있었나"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소통을 '말'의 문제로만 생각해왔습니다. 더 정확한 단어, 더 논리적인 문장, 더 설득력 있는 구성. 그러나 김정운은 이 모든 것보다 먼저 작동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정서 조율' 파트는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소통의 피로가 정보의 과잉이 아니라 정서 조율의 실패에서 온다는 진단은, 화상 회의를 반복하면서 느꼈던 막연한 피로감의 정체를 정확히 설명해줬습니다. 말은 오갔지만 감정의 파장이 맞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순서 바꾸기' 파트의 오바마 연설 분석도 압권입니다. 6초의 침묵이 21세기 최고의 연설을 만든 이유—논리를 멈추고 노래했을 때, 경계가 녹아내렸다는 것. 이 분석 하나만으로도 책 값을 충분히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은 처방전이 아니라 진단서에 가깝습니다. 소통을 잘하는 구체적 기술을 원하는 독자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우리의 소통이 자꾸 어긋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5. 추천 독자
- ① 관계에서 자꾸 실패한다고 느끼는 분 — 말은 잘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분들께 근본적인 답을 제공합니다.
- ② 조직과 팀을 이끄는 리더 — "망하는 회사일수록 회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저자의 진단처럼, 조직 문화를 정서 공유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③ AI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는 분 — 기술이 인간의 소통을 대체할 수 있는지, 인간만이 가진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은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 ④ 심리학과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 — 비고츠키, 토마셀로, 하버마스, 헤겔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통찰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지적 여정을 즐기고 싶은 분들께 적합합니다.
- ⑤ 한국 사회의 피해자 서사와 갈등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 — '관점 바꾸기'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이렇게 어려운지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6. 작가 정보
김정운은 독일에서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심리학자이자 작가입니다.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후 일본 교토와 독일 뮌헨을 오가며 독립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학술 이론을 현실 언어로 번역하는 탁월한 능력과 날카로운 유머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에디톨로지』, 『창조적 시선』 등이 있으며, 특히 창조성과 자기표현, 문화와 심리의 교차점을 일관되게 탐구해왔습니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그간의 연구를 인간 소통의 원형이라는 주제로 집대성한 작품으로, 30년에 걸친 학문적 여정의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7. 목차
Part 1. 터치 _ Touch
피부는 '제2의 뇌'입니다 / 캥거루도 알고, 어미 쥐도 압니다 / 왜 하필 무릎에 앉힐까요? / 프로이트의 '이드', 칸트의 '물 자체',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 / 셀프 터치: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다 / 터치의 역설
Part 2. 눈맞춤 _ Eye Contact
인간만이 흰자위가 있습니다 / 눈맞춤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 눈맞춤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 자폐 스펙트럼과 눈맞춤 / 눈맞춤의 사회적 규범 / 디지털 시대의 눈맞춤: 카메라를 봐야 하는가, 화면을 봐야 하는가?
Part 3. 정서 조율 _ Attunement
의 모방 능력 / 가장 형편없는 인간 건축가가 최고의 꿀벌보다 위대한 이유 / 느닷없이 내 2만 권의 책이 필요없어졌습니다! / 희한하게도 서양의 현인 중에는 '맹인'이 많습니다 / 언어는 '사회화'되는 걸까요, '내면화'되는 걸까요? / '미술'보다 '음악'이 더 위대합니다! / AI는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 색을 듣고, 소리를 본다! / '객관성의 신화'에서 '상호주관성의 세계'로
Part 4. 순서 바꾸기 _ Turn Taking
'6초의 침묵'이 21세기 최고의 연설을 가능케 했습니다 / "누가 그랬어?" / 생방송에 침묵이 흐르면 방송 사고입니다! / 단언컨대, AI는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처럼 말하지 못합니다! / 침팬지는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Part 5. 함께 보기 _ Joint Attention
시선이 곧 마음입니다 /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진화생물학적 기원 / 인간 문명의 기원: '9개월 혁명' / 인간만 하늘을 '함께' 올려다봅니다 / 5명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리의 모든 사람이 따라서 봅니다 / 자꾸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 매우 폭력적인 '포식적 관객'의 출현
Part 6. 관점 바꾸기 _ Perspective Taking
MBTI는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큰 차이 없습니다 / 원래 '교양'은 없었습니다 /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심리학의 '관점 바꾸기' / '마음 이론'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걸까요? / 날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새의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요? / 나이가 들어서도 '관점 바꾸기'가 가능하려면 / 인간은 체계적으로 비합리적입니다! / 우리가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쉽게 속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 '관점'의 기원 /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지루함', '불안함' 그리고 '재미'
보론(補論) _ 왜 소통하는가
아주 사적인 에필로그 _ 지난 30년 동안 이 책을 너무나 쓰고 싶었습니다
결론
『말하지 않고 말하기』는 단순히 소통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서로를 이해해왔는가. 그리고 그 능력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가.
정보는 넘치는데 이해는 사라지는 시대, AI는 인간의 말투를 능숙하게 흉내 내지만 '말하기 전에 이미 말해야 하는 것들'의 감각과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터치의 온기, 눈맞춤의 승인, 정서 조율의 리듬, 0.2초의 순서 바꾸기,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경험,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보는 용기—이 여섯 가지야말로 AI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 소통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매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점점 더 고립되어 갑니다. 이 책은 그 역설의 원인을 가장 깊은 곳에서 짚어냅니다. 관계에서 자꾸 어긋난다고 느끼는 분, AI 시대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 그리고 30년 경력의 문화심리학자가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읽고 나면 분명히,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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