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할매 ㅣ 황석영 ㅣ 소설 ㅣ 창비 ㅣ 251212
한국문학의 거장 황석영이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할매』로 돌아왔습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세계를 열광시킨 『철도원 삼대』 이후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한 그루 팽나무를 중심으로 6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장대한 서사입니다.
인간 너머의 생명으로 시선을 확장한 이 소설은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시작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 팽나무 '할매'가 목격한 역사와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순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하는 이 작품을 소개합니다.

본론
1. 책 소개
① 제목: 할매
② 저자: 황석영
③ 출판사: 창비
④ 출간일: 2025년 12월 12일
⑤ 장르: 한국소설, 장편소설
⑥ 페이지수: 224쪽
2. 줄거리
소설은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뚫고 남쪽으로 날아온 개똥지빠귀의 여정으로 시작됩니다. 아무르 강변을 떠나 긴 여행 끝에 금강 하구의 한적한 빈터에 도착한 이 작은 새는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새의 육신은 서서히 흙으로 분해되어 사라지지만, 그 뱃속에 품고 있던 팽나무 열매 하나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자 작은 싹을 틉니다. 바람과 햇빛, 폭풍우를 견디며 자란 이 어린 팽나무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이자 정신적 버팀목이 되는 거대한 나무 '할매'로 성장합니다.
조선 건국 초기, 절에 들어왔다가 환속한 승려 몽각은 굶주림과 가난을 피해 금강 하구의 갯벌 지역에 정착합니다. 그는 황무지를 일구며 살아가던 중 자라나는 팽나무와 깊은 교감을 나눕니다. 어느 날 몽각은 나무 아래 앉아 깊은 명상에 잠기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는 없다. 나무도 풀도 물도 바람도 돌도 모두 나와 같다." 그는 자신이 키운 풀을 팽나무 가지 위에 올리며 "할매, 이것이 당신 자식이라오"라고 말하며 이 나무와 한 식구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렇게 팽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닌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이 됩니다.
세월이 흐르며 팽나무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교차합니다. 당골네 고창댁은 나무와 영적으로 교감하며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무당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팽나무를 신성한 존재로 여기며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었습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는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유분도가 이 땅을 밟았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그의 피는 팽나무가 서 있는 땅에 스며들었습니다.
가장 격렬한 시기는 동학농민운동 때였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외침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농민군 배경순은 우금치 전투에 참전합니다. "동학군은 처음에는 징에 꽹과리에 북을 장하게 짓치면서 고개를 향하여 돌격했다. 따다닥 따다닥 하는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탄환이 날아오는데 무슨 벌레 소리 같았다."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 앞에서 농민군은 "맨 앞에서 화승총 가진 대열이 나아가면서 일제히 총을 놓았지만 거리가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농민군은 앞으로 뛰어나갔고 가을 추수 볏단 넘어가듯 대열이 일제히 쓰러지곤 했다." 배경순 역시 이 전투에서 산화했고, 그의 꿈과 희망은 팽나무의 나이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팽나무는 더욱 참혹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일제는 수탈을 위해 군산에 비행장을 건설했고, 활주로 옆에 서 있던 팽나무의 어린 분신은 일본군 특공대 조종사들의 권총 사격 연습 표적이 되었습니다. 총알 세례를 받은 어린 나무는 온몸이 짓무르고 썩어 들어가다 결국 베어져 나갔습니다. 팽나무 할매는 자신의 분신이 고통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이 땅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거대한 개발이 시작되면서 바닷길은 막혀버렸습니다. 갯벌 생태계는 급격히 파괴되었습니다. "비가 한줄금이라도 내리면 이제나 저제나 바닷물을 기다리던 갯벌 생물들이 모두 갯벌 위로 올라왔다. 갯벌 위로 올라온 작은 조개들은 몸을 세우고 필사적으로 펄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말라버린 갯벌은 그 작은 몸마저 받아주지 않았다. 갯벌 생물들은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바닷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평생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수만 마리의 생명들이 말라가는 갯벌에서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갯벌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환경 활동가 배동수와 순교자 유분도의 후손이자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한 유 방지거 신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파괴된 땅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며, 철조망에 갇힌 팽나무를 찾아가 끌어안습니다.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갯벌 한가운데서 기적처럼 들려오는 뭇 생명들의 거대한 합창 소리는 인간의 탐욕으로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생명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언합니다.
팽나무 할매는 600년의 세월을 지켜보며 깨닫습니다. 개똥지빠귀의 뱃속에서 자신이 자라났듯이, 사람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사람의 육신을 먹은 칠게를 다시 사람이 먹는 순환 속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무는 말합니다. "생사는 물론 세상만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개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른 형태로 순환하며 영원히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3. 장점
① 시공간을 초월한 서사적 확장: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600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을 한 그루 나무의 시선으로 관통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짧은 생애로는 파악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② 생태적 사유의 깊이: 단순히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을 철학적으로 성찰합니다. 불교의 인연과 순환 개념, 동학의 사인여천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③민중사의 생생한 복원: 역사책에서는 한 줄로 요약되는 사건들 속에 살았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황석영 특유의 입담과 디테일로 되살립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과 일제강점기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④ 압도적인 문학적 완성도: 짧은 분량(224쪽) 속에 600년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도 전혀 산만하지 않고 각 인물의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시적인 문장과 서사적 긴장감이 조화를 이룹니다.
⑤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 한국적 정서와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생명, 순환, 인연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를 다루어 세계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4. 감상평
①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 소설을 읽으며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마리 새의 죽음이 한 그루 나무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그 나무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생명을 품고 지켜보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② 역사의 무게감: 동학농민운동 장면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죽어간 농민군들의 비극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가을 추수 볏단 넘어가듯" 쓰러지는 농민군의 모습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③ 현재적 의미의 깊이: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파괴되는 갯벌 생태계의 묘사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바닷물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갯벌 생물들의 모습에서 자연의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④ 희망의 메시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연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망을 줍니다. 철조망에 갇힌 나무를 끌어안는 신부의 모습은 인간이 가진 연민과 사랑의 힘을 보여줍니다.
⑤ 문학적 감동: 정지아 작가가 "수억 년의 시간을 건너 지구에 추락한 작은 운석의 틈새에서 하루살이가 장엄하고도 허망한 생을 마감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고 한 추천사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킵니다.
5. 추천독자
①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독자: 조선 건국부터 현대까지 민중의 시각에서 바라본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②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 인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생태적 사유로 나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③ 문학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독자: 황석영의 노련한 서사 기술과 시적인 문장을 감상하고 싶은 문학 애호가들에게 적합합니다.
④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독자: 생명의 순환, 인연의 의미,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⑤ K문학에 관심 있는 해외 독자: 한국적 정서와 보편적 가치가 조화된 작품으로, 세계 문학 무대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수작입니다.
6. 작가정보
황석영(1943~)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고교 재학 중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객지』 『삼포 가는 길』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철도원 삼대』 등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작들을 발표했습니다.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단재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24년 『철도원 삼대』가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세계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 민중의 삶을 묵직하게 담아내면서도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베트남전쟁, 분단, 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으며, 최근작 『할매』에서는 생태적 사유로까지 그 지평을 확장했습니다.
7. 목차
이 책은 장편소설로서 별도의 장 구분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할매) 이후 작가의 말, 감사의 말, 그리고 백지연(문학평론가), 전우용(역사학자), 정지아(소설가)의 추천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황석영은 "이 나무를 둘러싼 육백 년은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며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히며, 불교의 열반경과 동학의 사인여천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결론
황석영의 『할매』는 한 그루 나무의 600년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민중의 삶, 그리고 생명의 순환이라는 우주적 진리를 아우르는 대서사시입니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팽나무의 성장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격동기를 관통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온 생명의 힘을 증언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이나 생태소설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의 거대한 인연의 그물망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문명전환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 역사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불평등이 공존하는 오늘날, 황석영은 600년 묵은 나무의 지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으며, 한 생명의 끝은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된다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싹을 틔우고, 파괴된 땅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다시 일어선다고.
『할매』는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발표된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한국적 정서와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생명, 순환,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아내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역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의 마음속에 결코 쓰러지지 않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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